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후기를 쓸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잘 만든 영화구나 싶었고, 딱히 할 말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영화관을 나오고 며칠 뒤에 실제 단종의 성격을 다룬 글을 우연히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영화가 만들어낸 단종과 역사 속 단종의 간극이 이 영화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배우 연기가 메운 빈틈들
저는 이 영화에서 호랑이 CG가 아쉽다는 평을 접한 적이 있는데, 솔직히 영화를 보는 내내 호랑이가 기억에 남질 않았습니다. 박지훈 배우가 화살을 명중시키는 그 순간, 저는 호랑이가 아니라 이홍위라는 소년에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배우 연기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극 중 단종 역을 맡은 박지훈은 파리한 소년에서 노기 어린 선왕까지를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냅니다. 여기서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란 주인공이 이야기 전반에 걸쳐 심리적·태도적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홍위의 캐릭터 아크는 이 영화의 감정 구조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데, 그 무게를 박지훈이 흔들림 없이 잡아줍니다.
엄흥도 역의 유해진은 코미디와 비극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듭니다. 특히 뗏목 줄을 잡아당기는 초반 장면과, 이홍위의 목에 걸린 활줄을 힘껏 당기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적 '대위법(counterpoint)'으로 기능합니다. 대위법이란 원래 음악 용어로, 서로 독립적이지만 조화를 이루는 선율을 겹쳐놓는 기법인데, 영화에서는 같은 행위가 전혀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배치하는 방식으로 차용됩니다. 뗏목을 잡아당기던 그 손이 줄을 당기는 손이 된다는 사실이 말없이 관객의 가슴을 누릅니다.
제가 영화를 보며 눈물이 도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엄흥도가 이홍위에게 "저도 전하의 사람들 안에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이홍위가 "그대는 아닌가?"라고 답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대사 자체는 단순하지만, 앞서 쌓아온 두 사람의 감정선이 그 한 마디에 압축되면서 생각보다 훨씬 크게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영화를 두 번째로 봐도 그 장면에서 또 눈물이 났다는 게, 저에겐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개연성 문제, 공감하지만 다르게 보이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천만을 넘기면서도 꾸준히 지적받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서사적 개연성입니다. 개연성이란 이야기 안에서 사건과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납득되는 정도를 뜻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도 이 부분에서 약간 걸렸습니다.
이홍위와 엄흥도가 어느 순간 굉장히 가까워져 있는데, 그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촘촘하지 않다는 느낌은 저도 받았습니다. 엄흥도가 마을 사람들의 안위보다 이홍위를 선택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아서, 관객에 따라서는 감정의 비약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연출 방식에 대해서는 다르게 봅니다. 비장한 장면에서 번개가 치거나 비가 내리는 연출이 다소 고전적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장치들이 관객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으로 작동했다고 느꼈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화면 안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청각적 요소를 통해 감정을 조율하는 연출 방식을 말합니다. 낡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정확하게 관객의 감정을 겨냥하는 미장센은 여전히 힘이 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서사적 허점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홍위가 유배지를 이탈하는 중죄를 저지르고도 별다른 처벌 없이 넘어가는 장면
- 엄흥도와 이홍위 사이 감정이 급격히 가까워지는 과정의 생략
- 유배지 내에서 매끼 쌀밥이 제공되는 설정의 현실성 부족
- 한명회의 매복을 너무 쉽게 피해가는 후반부 전개
이런 허점들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관객을 붙드는 이유는, 박지훈과 유해진의 열연이 그 틈을 메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게 배우라는 직업의 본질적인 역할이기도 합니다.
천만 흥행이 보여주는 것, 그리고 사극이라는 장르의 가능성
한국 영화 산업은 최근 몇 년간 심각한 침체를 겪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극장 관객이 돌아오지 않았고, OTT 플랫폼의 성장으로 극장 콘텐츠의 경쟁력 자체가 흔들렸습니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국내 극장 관객 수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대비 약 30% 수준에 머물렀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런 상황에서 왕과 사는 남자의 천만 돌파는 상징적입니다. 영화가 재미있으면 관객은 여전히 극장에 온다는, 단순하지만 오랫동안 증명되지 못했던 명제를 다시 확인시켜줬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마스터 플롯(master plot)'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스터 플롯이란 서사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 수천 년에 걸쳐 반복되고 변주되어온 이야기의 기본 뼈대를 말합니다. 억울하게 쫓겨난 인물이 소박한 행복을 찾고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는 구조는 그 자체로 검증된 마스터 플롯입니다. 여기에 코미디와 휴먼 드라마를 레이어처럼 얹어서, 뒤에 오는 비극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실제 단종에 관한 글을 찾아 읽었는데, 역사 속 단종은 유약하지 않고 오히려 어린 나이부터 총명하여 대신들을 휘어잡았다는 기록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만약 영화가 그 단종을 그대로 담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했습니다. 어쩌면 슬픈 비극 대신 통쾌함이 섞인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왕위를 되찾는 결말로 흘러갔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관객이 사극에서 원하는 건 사실의 재현이 아닙니다. 그 역사가 불러일으키는 감정, 즉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제대로 경험하고 싶은 것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역사적 사실을 큰 틀에서 따라가되, 가장 결정적인 장면에서 창작의 자유를 발휘했습니다. 단종을 교살한 노비와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를 한 인물로 겹쳐 놓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고증에 어긋나는 설정이지만,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 슬프다고 느끼는 관객이 많습니다. 사극 영화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연구도 이러한 창작적 재해석이 관객의 역사 인식에 긍정적인 관심을 유도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출처: 한국영화학회).
관객으로 들어가 백성으로 나온다는 후기가 이 영화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사극이라는 장르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왕과 사는 남자는 걸작이라고 부르기엔 허점이 있고, 평론가들의 별점도 높은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증명한 것은 분명합니다. 관객이 원하는 걸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걸 흔들림 없이 전달하는 영화는 어떤 불황 속에서도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인다는 것입니다. 침체된 한국 영화 시장에서 이 영화의 흥행은 반가운 신호입니다. 아직 관람하지 않으셨다면, 이야기를 미리 알고 보셔도 충분히 울게 됩니다. 오히려 그게 이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